[1등] 어느 상담사의 동네주민으로 더불어 살기 - 안주현(1급 no.1865)
“살면서 지인 중에 의사 한 명쯤은 있는 게 좋아.” 어른들에게 자주 듣던 말이고, 나이를 먹어갈수록 점점 더 공감하는 말이다. 그렇다면 살면서 지인 중에 상담사 한 명쯤 있는 것은 어떤 일일까?
내가 주변 사람들에게 ‘상담사 지인’으로 인식되는 순간은 열에 아홉의 경우 “내가(혹은 내가 아는 누구누구가) 상담이 필요한 것 같은데 상담 센터를 추천해줄 수 있어?”라는 질문을 받을 때이다. 신뢰할 수 있는 상담사를 만나 효과적인 도움을 받는 것은 인생에 매우 중요한 경험이기에 늘 신중하게 센터를 알아보고 소개해준다. 그리고 이런 고급 정보를 제공할 수 있다는 것에 꽤나 뿌듯함을 느낀다.
그럼에도 가끔은 아쉬울 때가 있다. 상담사로서 오랜 시간 수련하고 공부하며 쌓아온 지식과 경험을 정작 내 주변 사람들과는 직접 나눌 수 없다는 사실 때문이다. 요리사인 지인의 집에서 맛있는 식사를 대접받고, 공방을 운영하는 지인에게서 예쁜 소품을 선물받고, 금융권에 종사하는 지인에게서 좋은 상품을 추천 받지만, 난 그들에게 무엇을 줄 수 있을까.
상담사는 안전하고 전문적인 상담을 위해 지인과 상담관계를 맺지 않는다. 한국상담심리학회 상담심리사 윤리강령에 ‘상담심리사는 객관성과 전문적인 판단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다중 관계는 피해야 한다.’라고 분명히 명시되어 있다.
내가 사는 동네에는 다양한 활동을 하는 모임들이 있다. 나는 그 중 한 두 개의 모임에 참여하고 있고, 참여하지 않는 모임들도 누가 어떤 활동을 하고 있는지 어렴풋이 알고 지낸다. 그러던 작년, 따뜻하고 화창한 봄날, 꽃이 피듯 만나기만 하면 이야기가 피어오를만한 어느 날, 동네에서 알음알음 알던 지인의 가족을, 그리고 지인을 2주 간격으로 갑작스럽게 떠나보내야 하는 일이 벌어졌다. 모두가 충격에 빠졌고, 슬픔과 허망함을 감출 길이 없었다. 첫 번째 장례식에선 그 괴로움에 서로를 부둥켜안았고, 두 번째 장례식에선 그마저도 버거워 서로 시선을 멀리씩 두게 되었다.
어느 죽음인들 슬프지 않겠냐마는, 지역 공동체 안에서 갑작스러운 죽음을 연달아 겪어야 한다는 것은 또 다른 차원의 어려움이 덧씌워지는 일이었다. 이것은 공동체의 슬픔이요 상처이기도 했던 것이다.
그때 나는 내가 사랑하는 지역, 내가 아끼는 사람들이 겪고 있는 고통 앞에서 단순히 함께 아파하는 것 이상의 무언가를 할 수 있지 않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의 마음과 고통, 삶의 면면을 깊이 만나는 것을 업으로 하고 있는 상담사로서 내가 할 수 있는 몫이 있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나라고 슬프지 않고 의연한 것은 아니었지만 오랜 시간 수련과 공부를 통해 삶의 경험을 탐구 해오며 조금은 더 준비되어 온 바가 있는 것도 사실이었다. 특히 죽음과 상실, 애도에 대해 개인적으로 조금 더 관심을 가지고 공부해왔기에, 상실을 경험하고 애도함에 있어 어떤 것들이 우리를 가로막을 수 있는지, 어떤 점들에 세심하게 주의를 기울이며 마음을 나누어야 할지, 고통스럽더라도 치유를 향해 나아가는 길은 무엇인지를 알고 있었다.
한 달 정도의 숙고 끝에 동네의 구심점이 되는 모임에 만약 별도의 추모 시간을 갖고자 한다면 내가 함께 하고 싶다는 뜻을 전했다. 갑작스런 이별의 충격이 컸던 만큼, 모두가 마음의 준비를 하는데 시간이 필요했다.
무덥고도 습한 공기의 무게가 가벼워지고 있음이 느껴지기 시작하던 어느 가을날 추모 모임을 갖고 싶은데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며 도와줄 수 있냐는 연락을 받았다. 반갑고 감사한 마음으로 기꺼이 함께 하겠다고 하였다.
우리 사회는 예전에 비해 심리적 건강과 다양한 감정 상태를 인정하고 돌보는 일에 더 관심과 자원을 투자할 수 있는 사회가 되었다. 이에 따라 상담에 대한 인식도 긍정적으로 변하면서, 심리검사나 심리적 증상에 대한 정보도 꽤나 보편적으로 공유되고 있다. 힘들 때, 혼란스러울 때, 자기 자신을 더 깊이 알고 싶을 상담 전문가를 찾는 것이 자연스러운 해결 방안 중 하나로 자리 잡고 있다.
그러나 이런 작업들은 여전히 매우 개인적인 영역에서, 심지어 남들이 알지 못하게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다. 우리의 마음은 나누고 공유할 때 비로소 본질이 선명해지고, 혼자 끌어안고 있기 벅찬 마음이 자신에게 있다는 것을 공유하는 것만으로도 그 자체가 치유적인 힘을 발휘할 수 있다.
가끔 사별을 경험한 유가족이 몇 년이 지나도록 고인에 대한 이야기를 단 한 마디도 나누지 않았다는 이야기를 듣게 될 때가 있다. 금지된 공공연한 비밀, 그 무게에 숨이 막혔을 가족들을 생각하면 명치에서부터 고통이 느껴진다.
심리 상담은 너무도 중요하고 유용하고 효과적인 작업이다. 그러나 삶에서 만나는 모든 문제를 매번 상담으로만 해결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럴 땐 살 맞대고 있는 공동체가, 지역이, 사회가, 이웃이, 가족이 함께 해주는 몫도 있어야 한다. 하지만 아직 우리 사회는 이러한 장을 자연스럽게 열 수 있는 준비는 되어 있지 못한 듯 하다.
상담 전문가가 아닌 ‘상담사 지인’으로서 내가 무엇을 기여할 수 있는가에 대한 고민의 열쇠가 여기에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작년 9월 셋째 주 금요일 저녁 우리는 고인이 애정하던 공간에 모였다. 각자 고인을 추억할 수 있는 무언가를 손에 들고… 마땅한 것을 준비할 수 없었던 사람들은 즉석에서 클레이로 그를 떠올릴 수 있는 것을 만들기도 했다. 저마다의 다른 마음들, 다른 기대와 염려들을 나누고 고인과의 에피소드를 나누었다. 울고, 웃고, 고인의 흉을 보기도 하면서, 이제까지 나는 몰랐던 그의 모습을 새롭게 발견하고, 나만 알고 있는 줄 알았던 그의 보석 같은 면을 다른 이도 알고 있었다는 것에 감탄을 하며, 그가 각자에게 그리고 우리에게 남긴 것을 깊이 생각해보는 시간을 가졌다.
아름다운 시간이었다. 우리와 함께 해준 고인에게, 그리고 고인을 기억함에 있어 함께 마음을 내어준 우리 모두에게 서로 감사해했다. 또한 나에게는 상담 전문가가 아닌 ‘상담을 전문으로 하는 업을 가진 동네의 어느 한 주민’으로 그 자리에 함께 할 수 있음이 매우 뿌듯한 시간이었다.
[2등] 학교상담에서의 전문성은 어떻게 증명될 수 있을까?- 이지원(1급 no.1420)
우리나라에서는 2007년에 처음으로 전문상담교사가 학교로 발령되었고 나는 그때 학교로 발령된 전문상담교사 중 1명이다. 교육청 소속으로 여러 학교를 순회하는 순회상담교사가 있었지만 이들은 전문적으로 상담을 전공한 교사가 아니었다. 우리나라 전문상담교사는 교과교사가 상담교사로 전직하면서 시작되었기에 처음부터 상담교사의 전문성은 애매하고 의심스러운 것일 수밖에 없었다.
나는 학부에서 심리학을 전공하고 상담심리 전공으로 석사 학위를 취득했을 뿐 아니라 상담심리학회에서 2급 자격증을 취득한 상태로 임용고시를 쳐서 상담교사가 되었다. 당시 다른 상담교사들과 비교한다면 나의 교육과 수련 경험은 압도적으로 많았던 셈이다. 하지만 실전 상담 경력이 많지 않았고, 중등학교나 청소년 대상 상담은 처음이었기에 솔직히 나도 학교상담에 대한 전문성을 자신할 수 없었다. 오히려 이미 형성된 상담자로서의 정체성으로 인해 나는 학교상담자로서의 정체성에 대해 혼란스러운 마음이었다. 상담교사는 상담자인 동시에 교사의 역할도 해야 한다. 도대체 비밀유지는 어디까지 가능하고 일반적인 상담이 학교 수업시간에 어느 정도로 가능한 것인지 누구도 확실히 알지 못했다.
첫학교는 특성화고등학교였는데 내가 아무리 상담을 열심히 한다고 해도 학교에서는 나를 못 미더워했다. 학교에서 교사는 가르치는 사람이어야 했고 행정이나 사업 역량이 중요한데 난 상담만 하고 싶어 했으니 그저 무능력한 교사로 보였을 거다. 처음 몇 년간 정말 도망치고 싶을 정도로 힘든 시간을 보냈다.
학교상담에서 전문가로 인정받고 싶었고 어려움에 있는 학생들을 제대로 돕고 싶었다. 그래서 심리학과가 아닌 교육학과 학교상담 전공으로 박사과정에 입학했고 좋은 상담자가 되기 위해 학회 1급 자격에 해당하는 상담 수련을 계속 이어나갔다. 당시에 내 주변 지인들은 나에게 이미 다른 상담교사 동료들에 비해 학위나 수련이 충분한데 굳이 박사에 들어가고 상담 수련을 더 받을 필요가 있느냐고 했다. 대부분 학교상담에서 그 정도의 전문성은 필요없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그냥 적당히 학교상담 경력이 쌓이고 학교에서 원하는 사업이나 행정 능력이 생기고 적응하면 되는 것 아니냐는 의견이 많았다. 어려운 상담 사례는 외부에 의뢰하면 된다고들 했지만 우리나라 학교 상황에서는 쉽지 않았다. 생각보다 의뢰할 곳이 많지 않았고, 보호자의 부재나 미동의로 의뢰가 불가능한 상황도 있었다. 외부로 의뢰를 하는 경우에도 학교에서도 해당 학생을 돕는 작업이 협력적으로 더해져야 상담 효과가 컸다. 이런 우리나라 학교 상황에 맞는 학교상담 전문가로서 나는 정말 제대로 잘하고 싶었다.
박사과정을 수료한 뒤에 나는 김포에 있는 중학교로 복직했다. 처음 복직하면서 교감선생님께 열심히 상담하겠다는 각오를 말씀드렸지만 교감선생님께서는 염려스러운 얼굴로 “선생님, 우리 학교에는 상담 받을만한 학생이 없어요. 그리고 선생님은 운영해야 할 사업이 많아서 상담할 시간이 없으실 거에요.”라고 말씀하셨다. 혹시라도 내가 섣부른 자만심으로 필요도 없는 상담을 한다고 학교 일을 제대로 안 할까 봐 걱정이 되었나 보다. 이전 학교 관리자에게 나에 대한 부정적인 평판을 들었을 수도 있다. 순간 둔기로 머리를 얻어맞는 기분이 들었다. 내가 학교에서 대안교실 운영하고 애플데이나 친구사랑데이 같은 행사나 하려고 힘들게 박사 공부하고 전문가 자격증을 받은 건가 싶은 마음에 막막하고 서운했다. 하지만 이미 학교상담을 위한 여러 가지 준비를 해서였을까? 시간이 지나면서 스스로 학교상담의 전문성을 증명하겠다는 오기가 생겼다.
일단 학교에서 원하는 역할을 열심히 수행하면서 동시에 내가 생각하는 학교상담 활동을 찾아서 했다. 상담실은 여러 가지 행사와 상담을 받는 학생들로 인산인해를 이루었고 상담 효과에 대한 입소문이 나기 시작했다. “상담선생님한테 상담을 받으면 뭔가 달라. 마음이 편안해지고 문제가 해결되는 느낌이야.” 상담 효과는 내담자를 통해 가장 빠르게 퍼진다. 하지만 비밀유지로 인해 학교 선생님이나 관리자가 알아차리려면 시간이 걸린다. 그들이 원하는 것을 충실히 하면서 경계를 없애고 결국은 내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부분에서 전문성을 보이는 과정이 필요했다.
2018년 우리나라 청소년들 사이에 자해가 무섭게 유행했다. 우리 학교에도 자해하는 학생들이 넘쳐났고 학교는 심각한 위기의식으로 뒤덮였다. 자해 위험이 있는 학생들을 상담하고, 병원에 의뢰하고, 자해하는 친구로 인해 두려움에 떠는 학생들의 불안을 해결해 주느라 나는 심한 소진을 겪게 되었다. 반복되는 자해로 입원했던 여학생이 다시 학교로 돌아오면서 SNS에 자살 예고를 남겼고 그 사실을 알게 된 다른 학생들이 동요하기 시작했다. 힘들었지만 그 위기의 구렁텅이 속에서 가장 정확하게 상황을 판단하고 적절한 대처를 할 수 있는 사람은 전문상담교사인 나였다. 나는 그 위기 상황 극복을 통해 정신건강과 생명존중 문화 조성에 이바지한 공을 인정받게 되었고 교육부장관 표창장을 수상했다. 가장 위기인 순간에 전문상담교사로서의 전문성이 가장 잘 발휘될 수 있다는 것을 경험할 수 있었다.
인문계고등학교로 옮기게 되면서 대부분의 학교 구성원들에게 학업과 입시가 가장 중요한 관심사임을 느낄 수 있었다. 하지만 이런 분위기 속에서도 위기는 존재한다. 다른 학생들이 성적을 올리고 좋은 대학을 가기 위해 노력할 때 하루하루 학교를 다니는 것조차 버거운 학생들이 있었다. 그들에게 학교는 우울하고 불안한 자극을 주는 곳이었고, 무기력하거나 좌절스러운 마음에 죽고 싶다는 생각이 들게 만들었다. 긍정적인 학업 분위기와 좋은 대학 입시 결과를 원하는 학교에서 부적응을 보이는 학생들은 그저 거추장스럽고 한심한, 혹은 어떻게 도와야 할지 몰라 난감하고 곤란한 마음을 불러일으키는 위험한 존재일 수 있다.
상담교사로서 낭떠러지에 서있는 학업중단 위기 학생들을 돕기 위해 우선 그들이 왜 학업을 중단하려고 하는지 원인을 파악해야 했다. 학업중단이라는 상황에 대해 개개인의 학생들이 보이는 원인과 상태는 매우 다양했다. 표면적으로는 학교를 그만두고 검정고시를 준비해서 대학에 가겠다는 흔한 이유를 대곤 하지만 진짜 이런 이유로 자퇴를 하는 학생은 많지 않다. 게다가 검정고시로 더 좋은 대학을 간다는 게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렇다고 자퇴하겠다는 학생에게 무조건 자퇴를 말리는 방법을 사용해서는 소용이 없었다. 학업중단숙려제를 이용하는 대부분의 학생들은 2주간 4회기의 숙려 상담을 받게 된다. 먼저 학업중단을 원하게 된 그들의 힘든 상황과 사연을 살피면서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함께 들여다보는 작업을 상담 과정을 통해 진행했다. 14명의 학생들과 학업중단숙려제 상담을 진행하였고 그중 8명의 학생들이 다시 학업에 복귀했다. 복귀한 학생이 학교생활에 잘 적응할 수 있도록 담임선생님, 학부모와 협력하면서 지속적으로 관리를 했다. 때로는 가정방문도 마다하지 않았고 치료가 필요한 학생들에게는 치료비를 지원해 주었다. 위기에 처해있는 학생들을 조기에 파악해서 학업중단이라는 결과가 일어나지 않도록 작년에만 20번 이상의 위기관리위원회를 열었다. 이런 나의 노력을 인정받아서 학업중단 예방에 기여한 공으로 두 번째 교육부장관 표창장을 수상하게 되었다.
두 번의 교육부장관 표창을 통해 나는 내가 학교상담에서 전문가로서 인정받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특정 사업이나 프로그램 참여 때문이 아니라 위기 상황에 있는 학생들이 학교생활을 잘할 수 있도록 돕는 상담을 통해 인정받은 것이기에 더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여전히 주위에서는 전문상담교사의 상담 전문성에 대해 회의적인 시선을 보내고 있다. 또한 전문상담교사가 해야 하는 역할에 대해서도 다양한 의견이 존재한다. 나는 개인적인 경험을 통해 전문상담교사의 학교상담 전문성은 위기상황에 대한 개입으로 가장 극명하게 드러날 수 있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청소년 자살율이 가장 높은 우리나라에서 전문상담교사는 어떤 역할을 해야 할까? 누구든지 할 수 있는 역할을 잘하는 것이 아니라 학교에서 벌어지는 위기 상황에 대해 가장 정확하게 파악하고 위기에 빠진 학생을 가장 전문적으로 도울 수 있는 사람이 상담교사여야 하지 않을까?
[3등] 군인의 명예를 지켜낸 상담의 힘 - 오승운(준회원)
깊은 어둠 속에서
겨울이 깊어가던 어느 날, 나는 보충대에서 한 부사관과 마주했다. 군복의 깃을 여미며 들어온 그는 어깨를 축 늘어뜨리고 있었다. 그의 눈빛에는 말할 수 없는 무게가 실려 있었다. 군 생활 30년을 해온 참된 군인이었으나, 형사사건에 연루되어 부대에서 분리조치 된 후 보충대로 파견된 상태였다. 부대 내 소문과 낙인, 그리고 그가 쌓아온 명성이 한순간에 무너져버렸다는 절망감이 그를 짓누르고 있었다.
어둠을 지나 새벽으로
그는 깊은 자기비난에 빠져 있었다. 사건의 판결이 나지 않은 상태에서도, 사람들의 시선과 소문이 그를 더 깊은 고립 속으로 밀어 넣었다. 그는 가족들마저도 부대 내 소문으로 인해 힘들어하고 있다고 말했다. 관사에서 지내는 동안에도 주변의 수군거림이 들리는 것만 같다고 했다. 한때 마라톤을 즐겼던 사람이었지만, 이제는 운동을 할 기운조차 없었다. 눈빛은 흐려졌고, 그는 점점 더 말수가 줄어들었다. “내가 정말 잘못한 걸까, 아니면 내 모든 것이 무너진 걸까?” 그는 스스로를 정죄하고 있었다.
나는 그와 하루 한두 시간씩 대화를 나누며 로저스의 인간중심 상담 기법을 바탕으로 그의 감정을 받아들이고 공감하는 것부터 시작했다. 그는 처음에는 조심스러웠지만, 점차 자신의 감정을 터놓기 시작했다. 자신의 감정을 솔직히 이야기하는 것만으로도 그의 얼굴에는 약간의 안도감이 스쳤다. 그는 처음으로, “누군가 내 이야기를 끝까지 들어주는 것 같다”고 말했다.
절망에서 희망으로 ? 상담이 만든 변화
우리는 ACT(수용전념치료, Acceptance and Commitment Therapy) 기법을 활용하여 그의 감정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연습을 했다. 그가 가진 죄책감과 자책은 어쩌면 너무나 자연스러운 감정이었을지도 모른다. 나는 그가 스스로를 판단하기보다는 감정을 인정하고, 그 속에서 자신의 가치를 다시 찾을 수 있도록 도왔다. 우리는 함께 그의 강점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는 군인으로서의 명예를 중요하게 여겼고, 체력과 정신력이 강한 사람이었다. “운동을 다시 해보는 건 어때요?” 나는 조심스럽게 물었다. 처음에는 고개를 저었지만, 며칠 후 그는 다시 운동을 시작했다. 매일 조금씩 아침에 일어나 운동을 하며 몸을 움직였다. 처음에는 겨우 몇 걸음이었지만, 점차 예전처럼 달리기를 할 수 있을 만큼 회복되었다. “조금씩 해보니까 몸이 반응하는 게 느껴져요.” 그는 희미하게나마 웃었다. 상담을 통해 그는 새로운 시각을 갖게 되었다. 과거의 사건이 그의 존재를 정의하는 것이 아니라, 그가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지가 더 중요하다는 것을 이해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의 변화는 단순한 신체적 회복에 그치지 않았다. 점차 그는 스스로를 믿기 시작했다. 상담 중 그는 조용히 말했다. “제가 다시 군생활을 잘할 수 있을까요?” 나는 단호히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이죠. 당신은 이미 해내고 있어요.” 그의 눈에 처음으로 희망이 스쳤다.
새로운 시작 ? 다시 군인으로 서다
11개월이라는 시간이 지나고 마침내 그는 무혐의 처분을 받고 원소속 부대로 복직하게 되었다. 복직하는 날, 그는 나를 찾아와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상담을 받지 않았다면 정말 버틸 수 없었을 겁니다. 제 이야기를 들어주고, 있는 그대로 받아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그가 마지막으로 떠나며 나를 향해 경례를 했다. 그 경례 속에는 깊은 신뢰와 감사, 그리고 다시 시작하겠다는 다짐이 담겨 있었다. 내가 손을 들어 답례했을 때, 나는 그가 이전보다 더욱 단단한 눈빛을 하고 있음을 보았다.
상담자로서의 성찰 ? 삶을 변화시키는 손길
이 경험을 통해 나는 상담에는 정해진 답이 없으며, 내담자의 특성과 상담자의 역량이 상담 효과를 결정짓는 중요한 요소임을 깨달았다. 상담은 단순한 문제 해결이 아니라, 내담자가 자기 자신을 받아들이고, 자신의 강점을 찾아 새로운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돕는 과정임을 다시 한 번 실감했다.
군대라는 환경 속에서 상담은 더욱 중요하다. 이곳에서는 규율과 명령 체계가 강조되지만, 그 속에서도 개개인의 감정과 정신 건강이 중요하게 다뤄져야 한다. 군 조직 내에서 상담의 역할은 단순한 정서적 지지가 아닌, 생존과 적응을 위한 필수적인 과정이다.
나는 앞으로도 계속해서 상담자로서의 역량을 키우고, 내담자들에게 더 나은 도움을 줄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다. 상담은 단순한 대화가 아니라, 함께 걷는 과정이다. 그리고 그 길의 끝에서, 내담자가 스스로 설 수 있을 때, 그것이야말로 상담자로서의 가장 큰 보람일 것이다. 나는 그 길을 계속 걸어갈 것이다.
[3등] 우리 모두에게 아름다운 이야기가 있다. - 윤영애(2급, no.5411)
그녀는 상담 첫 회기에 와서 말했다. “나는 나로 살고 싶어요. 이제 김다정(가명)으로 살고 싶어요. 다른 사람에게 휘둘리지 않고, 눈치 안 보고.” 나는 이 말을 얼른 기록지에 적어놓았다. 그리고 훗날 그녀가 “선생님은 저를 어떻게 사례개념화 했어요? 우리 상담의 목표는 뭐에요?”라고 당돌하게 물어왔을 때, 그녀도 잊고 있었던 이 첫 회기의 말을 다시 꺼내 화두에 올렸다.
그녀는 30대 중반의 대학원생이었다. 감정조절이 어려워 약물치료를 병행하고 있었다. 동글한 얼굴에 웃을 때면 밝고 솔직한 느낌이 더해져 편하게 느껴졌다. 그녀와 얘기를 나누다 보면 때때로 상담실 안이 가벼운 공기로 바뀌곤 했다. 위트가 있었다. 그녀는 자신의 떠오르는 생각이나 감정을 휴대폰 메모장에 기록했다가 나에게 종종 읽어주곤 했다. 생생한 감정이 다시 살아나 고인 눈물을 닦아낼 때면 나 역시 비슷한 감정이 맞닿아 눈시울이 불거지곤 했다.
그녀가 태어나서 가장 잘한 일 세 가지를 이야기한 적이 있다. 한 가지는 5개월 동안 태국, 라오스, 인도를 여행한 일이라고 했다. 본성대로 사는 것이 어떤 건지, 세상과 연애를 한다는 건 어떤 건지 반짝이는 눈빛으로 얘기했다. 그리고 두 번째로 잘 한 일이 상담을 받게 된 거라고 했다. 난 속으로 ‘오호!’ 쾌재를 불렀지만, 겉으로는 담담하고 조심스럽게 “뭣 때문에 그렇게 생각해요? 중요한 이유가 있을 거 같은데,,,”하고 질문을 던졌다. 그녀는 잠시 침묵했다. 그리고 천천히 말을 이어갔다. “상담을 받지 않은 채로 살았을 날들을 상상하기 힘들어요. 내가 사는 세상이 전쟁 같을 때, 마음속이 피폐해질 때 여기 와서 안전하게 숨어있을 수 있어요. 저한테 이곳은 벙커에요. 예전에는 엄마 뱃속에 들어가는 상상을 했다면, 지금은 상담실 바닥에 웅크리고 있는 저를 상상해요.” 에너지를 충전할 수 있는 곳, 살아가기 위해 숨을 고를 수 있는 곳, 안전기지가 되어준다는 것이 이런 의미일까? 그녀에게는 자신의 얘기를 들어주고 바라봐주는 한 사람이 간절히 필요했던 거 같았다.
상담을 시작하고 1년 정도는 매주 1회기씩 만남을 가졌다. 그리고 그 후 7년간은 2-3주에 한번씩 상황에 맞춰 상담을 지속했다. 중간에 종결하고 1년 넘게 상담을 하지 않은 시간도 있었다. 그동안 그녀는 약을 더 이상 먹지 않게 되었다. 본인에게 힘겨운 관계들을 끊어냈다. 그리고 새로운 사람들과 그전과 다른 방식으로 관계 맺기를 원했다. 하지만 관성 같은 관계의 굴레는 쉬이 벗겨지지 않았다. 가보지 않은 낯선 땅에 첫발을 디딜 때처럼 용기를 가지고 나아갈 때도 있었지만, 다른 모양의 비슷한 걸림돌 앞에 주저앉아 다섯 살 아이처럼 울고 있을 때도 있었다. 하지만 그녀는 상담을 통해 자신을 이해하는 마음의 지도를 그려가는 듯했다. 그녀가 태어나서 잘한 일 마지막 한 가지는, ‘사람의 마음을 공부한 것’이라고 했다. 그녀는 처음 내담자로 찾아왔을 때 다니던 대학원을 졸업했고 몇 개의 자격증도 취득했다. 이제 그녀는 어엿한 상담심리사가 되었다. 청소년상담센터에서 상담을 시작한 지 꽤 시간이 흘렀다. ‘힘들다. 어렵다.’고 말하면서 꾸준히 상담을 하고 있다. 외로움이 너무 커서 자신이 외로운 줄도 몰랐다고 말하던 그녀가 다른 이의 마음자리에 같이 앉아 있다. 누군가의 변화와 성장을 가까이에서 목격할 수 있다는 것은 탄생만큼 신비롭고 가슴 벅차다. 그녀의 이야기 역시 그랬다.
아름다움이라는 어원을 들여다보면, 아름(我)이 나를 뜻하기 때문에 ‘나다움, 나답다’로 풀이할 수 있다. 그래서 우리 모두에게는 각자의 아름다운 이야기가 있다. 아름다움은 결코 혼자서 발견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아름다움은 너와 내가 만날 때 비로소 실체가 드러난다.
이 이야기는 내담자였던 내가 상담자가 되어 되짚어보는 내 상담일지이다. 나와 상담사가 나누었던 찰나의 기록이다. 이제 그는 나를 ‘동료’라 부른다. 그리고 나는, 그가 내게 주었던 그 따뜻한 눈빛으로 누군가를 바라보고 있다.
[3등] 생성형 AI 시대에 상담심리사의 영역을 지켜내려면? - 이혜숙(1급, no.2152)
2022년 12월 4일, ChatGPT를 처음 접하였습니다. “세상의 모든 지식을 학습시킨 AI 챗봇이래.” 그 즈음, “AI 챗봇의 부상에 위협받는 구글 검색”이라는 제목의 글에 혹해서 세상이 당장 바뀌는 것이 아닌가 싶기도 했습니다.
그러다 2023년 어느 날, “상담왕 오운영”이라는 ChatGPT로 만들어진 챗봇을 보게 되었습니다. “상담왕이라고?” 순간 너무 깜짝 놀라서, 상담심리사가 이렇게 대체되고 마는가 불안한 마음에 챗봇과 대화를 나눠보니, 이건 상담심리가 아니었습니다. 그저 문제를 해결해주는, 해결 방안을 쭉 나열해주는 조언자에 불과한 이 챗봇을 혹여나 사람들이 심리상담이란 이런 거구나 라고 오해할까 봐 마음이 불편해졌습니다.
그래서 생성형 AI인 ChatGPT에 대한 공부를 시작했습니다. IT 업계에서 꽤 유명한 개발자분들의 강의를 들으며 대형 언어 모델인 LLM에 대한 공부를 시작으로 프롬프트 엔지니어링에 대한 공부를 이어나갔고, 하나씩 나만의 심리상담 챗봇을 만들며 상담에 적용해서 활용해보기 시작했습니다.
LLM을 이용한 상담에 관심이 큰 집단은 상담심리사들보다는 IT 업계의 개발자들인 것 같습니다. 즉, 심리치료봇을 개발할 수 있는 기술을 가진, 그리고 심리치료봇에 관심이 많은 개발자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이 심리치료봇이 실제로 치료적인 심리치료봇인지 판단해 줄 AI에 관심 있는 상담심리 전문가는 현재는 거의 없습니다. 따라서 상담심리계에서 AI와 심리치료 챗봇 개발에 대한 관심이 더 풍부해진다면, 관련 개발이 더 진전되지 않을까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 중간중간 관련 글을 SNS에 올리다 보니 개발자분들 두 분과의 컨택이 있었습니다. 한 분은 심리상담 앱을 개발한 분이셨고 한 분은 로봇을 개발하셔서 심리치료와의 연결점을 고민하시는 분이셨습니다. 서로의 니즈가 달라 이야기가 더 진전되지는 못했으나 느낀 바는 개발자분들은 결국 멘탈 헬스케어에 관심이 크고 상업적으로 큰 돈을 벌 수 있는 아이템이라고 생각은 하시나, 이 내용이 치료적인지는 알지 못하시므로 상담심리 경험이 많은 상담심리 전문가와의 협업을 간절히 원하시는구나 라는 생각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또한 개발자분들과 대화를 잘 나눌 수 있으려면 LLM에 대해 더 많이 공부하고 알아야겠구나 라는 생각에 이르렀습니다.
그래서 2023년 말에 챗봇을 공부하고 개발하는 스터디 모임을 꾸리게 되었습니다. 5~6분 정도의 소수 인원이 같이 ChatGPT에 대해 공부하고 나름의 챗봇도 만들어 의견을 나누고 공유하는 시간을 가졌으나, 현재의 상담심리 트렌드를 너무 앞서갔는지, 동기가 줄어 흐지부지되고 말았습니다. 그러다가 스터디 모임원이셨던 지수인 선생님께서 연락을 주셔서 2024년 가을 한국상담심리학회 학술대회를 준비하게 되었습니다.
“ChatGPT 상담자 대화기술 연습 프로그램”을 챗봇으로 만들어 사전 체험단을 꾸려 1, 2급 분들의 피드백을 바탕으로 재수정하고, 발표를 준비하였습니다. 발표 내용은 ChatGPT의 특성과 프롬프트 엔지니어링, 그리고 챗봇을 직접 만드는 과정까지 소개하였고, 상담자 대화 연습 프로그램을 소개하고 시연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총 450여 분의 상담심리사분들과 함께한 시간은 생성형 AI의 바람이 상담심리계에도 부는 것인가 라는 기대를 갖게 했습니다.
강의 피드백도 좋았습니다. “챗봇 만들기가 너무 좋고, 새롭고 재미있었습니다. 앞으로 이것저것 적용해보고 내담자를 위해 만들어보고 싶습니다. 너무 유익한 강의였습니다”라는 평이었습니다. 이러한 피드백과 강의 신청자분들이 많으셨다는 점에서 상담심리사분들이 AI에 대한 관심도가 크구나 라는 것을 알게 되었고, 같이 발표하셨던 지수인 선생님과 상담심리사분들에게 잘 안내할 수 있는 유용한 매뉴얼을 만들어야겠구나라고 생각이 되어져서 2월에 드디어 “심리상담사를 위한 ChatGPT 활용 매뉴얼”을 출간하게 되었습니다.
AI 시대가 도래했습니다. 이제는 미술 매체, 모래, 타로 등과 같이 AI도 하나의 상담 도구가 되었습니다. 물론 AI 활용 자체에 대해 아직은 의견이 분분하며, 불편감을 느끼시는 상담심리사분들도 상당하리라 생각됩니다. 상담심리에서 도구로 AI를 선택해서 사용하는 것은 각자의 상담심리사분들의 선택에 맡겨질 부분이며, 모든 선택은 존중되어야 합니다.
그러나 이제는 엄청난 AI의 발전으로 연구자나 개발자가 아닌 누구나 챗봇을 저렴하고 간단하게 만들 수 있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예전에는 내담자와 상담심리사들의 니즈를 충족시켜주고 싶지만 해줄 수 없었던 것이 기술의 발전으로 이제는 고려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여기에서 중요한 사실은 상담자 역량 강화 챗봇, 내담자 상담을 도와줄 수 있는 챗봇은 경력과 상담심리 지식이 풍부한 상담심리사들만이 만들 수 있다는 것입니다. 윤리적인 고려도, 챗봇이 치료적인지도, 또 상담심리사들의 역량 강화를 도울 수 있는 연구도 모두 상담심리사들이 해야 합니다. 우리의 영역을 잘 지켜내려면 우리 또한 이미 발전하고 있는 AI의 발전 속도를 같이 동행해 나가야 한다고 생각됩니다. 그 시작을 함께 걸어나갈 수 있길, 시대의 선물을 많은 상담심리사분들이 누리시기를 소망하는 마음을 전합니다.
[3등] 배우들의 마음 옆, 상담심리사 - 황래영(2급 no.6944)
영화나 드라마 촬영 현장에서 연기하는 배우들의 열정은 마치 손으로 잡힐 것처럼 뜨겁다. 이들은 하나의 장면 속에 등장하는 다양한 감정들과 생각, 행동들을 연기하며 카메라 속에서 현실 속의 자신과는 다른 또 다른 자신이 된다. 그 과정 속에서 배우들은 다양한 소진감을 경험한다. 작년에 배우 공유님은 한 매체의 인터뷰에서 “엄청난 에너지를 쏟고 나면 어느 날, 그 여운이 툭 온다.”며 배우들이 감정 연기 후 경험하는 후유증 경험을 꺼냈다. 그는 “물리적으로도 호흡이나 에너지를 많이 쓰는데, 간혹 정서적으로 혼돈이 올 때가 있다.”며 “가끔 내 개인의 정서에도 영향을 준다.”고 배우들의 연기 후유증 경험을 나눠주었다.
최근에는 이러한 배우들의 연기 후유증을 예방하기 위해 드라마 촬영 현장에서 심각한 연기 후유증이나, 트라우마를 유발할 수 있는 장면에 상담자를 섭외하는 경우가 많아졌다. 드라마 작품 계약 단계에서 심리자문을 제공할 수 있는 전문가를 섭외하는 것이 계약조건인 작품들도 늘어나고 있으며, 드라마 작품의 심리적 안정성을 중요시 여기는 분위기도 조성되고 있다. 특히 아역배우들은 발달선상에서 민감한 발달을 보이고 있어 이들의 심리적 안정성은 매우 중요해 대부분의 드라마 심리자문은 사실상 ‘아역배우’들을 위해 존재한다. 내가 드라마 아동심리자문을 시작하게 된 것 또한 아역배우들의 심리적 안전을 확보하고 트라우마 예방을 위함이었다. 나는 대학원에서 아동청소년상담을 전공하면서 상담심리사 2급 취득을 위해 받았던 수련기간 5년 중, 1년을 아동청소년 중심으로 받았다. 이런 부분들이 SNS를 통해 드라마 제작 PD에게 보여져 SBS 드라마 ‘국민사형투표’의 아동심리자문을 요청 받았다. 국민사형투표는 내가 상담심리사로서 공식적으로 심리자문을 요청받은 첫 작품이었다.
드라마 심리자문 현장은 상담실의 분위기와 확연히 다르다. 최소 70~80명의 직원들과 다수의 배우들이 하나의 장면을 위해 애쓴다. 상담심리사는 이들 사이에서 아역배우들의 감정과 행동, 현재 마음상태를 모니터와 실제 연기관찰로 살핀다. 특히 아역배우 본인들도 모르는 사이에 경험되는 심리적 외상과 트라우마 가능성을 민감하게 확인하며 촬영 현장에서 경험할 수 있는 심리적 위험요인을 줄이는데 힘쓴다. 이러한 역할은 우리 나라 심리상담 현장에서 가장 전문성을 보이는 상담심리사들이 상담실에서 내담자들에게 제공하는 상담의 성질과 유사하다. 다만 그 역할이 드라마 촬영 현장에서 제공된다는 물리적인 차이점이 있을 뿐, 상담심리사는 드라마 현장에서 심리학적 전문성으로 아역배우들의 마음건강을 지켜낸다. SBS 드라마 국민사형투표 촬영 현장에서 상담심리사로서의 전문성으로 아동심리자문을 제공한 것이 계기가 되어 나는 여러 PD님들께 다양한 드라마 아동심리자문 의뢰를 받게 되었다.
그 중 기억에 남는 작품이 2개 있는데, 하나는 작년에 종영한 SBS 드라마 지옥에서 온 판사다. 당시 높은 시청률을 보였던 작품인 만큼, 드라마 아동심리자문 현장도 매우 따뜻했다. 아역배우들과 보호자 분들은 상담심리사로서 내가 제공하는 심리적인 조언을 하나, 하나 존중해주며 드라마 촬영 현장이 안전하게 마무리 될 수 있도록 협조해주셨다. 특히 당시 PD님이셨던 박미경 PD님께서는 드라마 촬영 사전에 대본을 보내주시면서 아역배우들을 위해 촬영 현장에서 배려해야할 부분을 상담심리사에게 자주 여쭤보셨고, 내 의견을 대부분 반영해주셨다. 드라마 방송 당시에 일부 위험한 장면들 속에 아역배우들이 등장하면서 일부 사람들은 아역 배우들의 마음건강을 염려했었다. 하지만 실제 촬영 현장에서 상담심리사인 내가 아역 배우들이 촬영 끝날 때까지 함께 머물며, 심리적 안전을 확보할 수 있는 호흡 그리고 면담을 수시로 실시하면서 아이들은 웃으며 촬영에 임할 수 있었다. 드라마 PD와 아역배우, 보호자, 여러 직원분들 그리고 한국상담심리학회 상담심리사가 함께 모여 심리적으로 안전하고 따뜻한 촬영 현장이 될 수 있었던 시간들은 지금도 추억이 되어 내 마음 속에서 생생히 살아있다. 무엇보다 드라마 작품 촬영 현장에서 만났던 아역배우들이 지금도 다양한 영화와 드라마, 광고 장면에서 빛나고 있어 이들에 대한 추억이 오래도록 유지되는 듯 하다.
최근 SBS 드라마 SNS 계정에서 <귀궁>이라는 작품에 대한 홍보가 자주 등장하고 있다. 이 드라마 또한 내가 아동심리자문을 제공한 작품인데, 특히 기억에 남는 작품 중 하나다. 드라마 담당 PD님께서 배우들의 마음건강에 상당히 관심이 많아 촬영 현장에서 작은 심리적 위험 가능성이 있으면 상담심리사의 현장자문을 요청하셨다. 그래서 경상북도 문경부터 전라남도 강진 촬영지들을 오가며 아역배우들의 마음건강을 살폈다. 그 과정에서 최근 섬세하고 깊은 연기력으로 주목받는 8살 아역배우 친구를 만났다. 처음 만나는 친구였음에도 “선생님, 저 연기할 때 옆에 있어주셔야 해요.” 말하며 상담심리사가 자신의 촬영 장면에 머물러주기를 원했다. 이 친구는 새로운 연기를 도전할 때, “선생님, 제게 용기를 주세요!”라고 말하며 상담심리사와 마음으로 이어지길 소망했다. 상담심리사는 상담실에서 내담자의 심리적 성장을 촉진하는 역할을 수행하는데, 이러한 역할이 드라마 촬영 현장에서도 이어지는 순간이었다. 상담심리사들이 사용하는 이론 중 하나인 <게슈탈트 상담>이론에서는 ‘인간의 성장’과 ‘잠재된 가능성’에 관심을 가지며 상담실에서 만나는 내담자들의 성장과 잠재된 가능성 발현을 돕는다. 촬영 현장에서 내가 만나는 아역배우들은 풍부한 성장 가능성이 있었으며, 자신에게 주어진 상황에서 스스로 일어설 수 있는 내적인 힘이 충만했다. 상담심리사로서 드라마 촬영 현장에 머물며 내가 해줄 수 있는 것은 이들과의 심리적 안전이 확보된 관계에서 자신들의 잠재된 가능성을 충분히 발휘할 수 있도록 조력하는 대화를 나누는 것이었다. 실제로 내가 만난 아역배우는 드라마와 영화 등 다양한 장르에서 ‘아역배우’로서 빛을 발하며 성장하고 있다. 마치 내담자가 심리적 성장을 이뤄 상담실 바깥을 나가는 것을 바라보는 것처럼 아역 배우들의 성장과정을 보며 상담자로서 뭉클한 감정이 올라오는 경험을 자주하는 요즘이다.
SBS, 티빙, 디즈니플러스, 유플러스 등 다양한 채널의 드라마 아동심리자문을 마무리하고 잠시 쉬어가던 도중, 다시 새로운 드라마 아동심리자문 요청이 들어오고 있다. 나는 새로운 드라마 작품 자문 의뢰가 들어올 때마다, 마치 상담실에서 새로운 내담자와 첫 회기를 진행하는 것과 같은 경험을 한다. 떨리면서도 설레고, 한편으로는 내담자가 ‘어떤 경험을 꺼낼까?’ 기대하는 마음을 경험한다. 중요한 것은 상담실에서 내담자를 만나는 것처럼 드라마 촬영 현장에서도 나는 ‘상담심리사’로서 존재한다는 것이다. 내담자와 상담실에서 차를 마시면서 마음을 나누듯, 고된 촬영 현장에서 아동심리자문을 마치고 배우들과 함께 푸드트럭의 간식과 야식을 나누는 소소한 따뜻함도 곁들이며.
최민식 배우님께서는 영화 “악마를 보았다.”에서 연쇄살인마 역할을 연기하며 큰 연기 후유증을 겪은 것을 고백하신 적이 있다. 가짜 피를 보고 헛구역질을 하거나 토를 하고, 본인도 모르는 사이에 주변 사람들에게 차가워지는 것을 겪으며 연기 후유증의 영향력이 크다는 것을 알렸다. 따라서 다양한 감정과 행동을 표현해야하는 드라마 촬영 현장에서 심리적 안전감과 트라우마 예방을 위한 심리자문은 거의 필수적이다. 특히 한국 상담심리학회 상담심리사와 같이 엄정한 수련과정과 엄격한 심사과정을 거쳐 자격을 취득한 전문가들은 배우들이 겪는 심리적 후유증에 대한 간접적인 이해와 전문적인 개입을 제공할 수 있어 많은 배우들의 심리적 안정감을 확보할 수 있다.
상담심리사들은 더 이상 상담실에만 머물지 않는다. 다양한 장면에서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각자의 전문성으로 사람들을 만난다. 서로 장면은 다르더라도 자신 앞에 있는 사람에 대한 [심리적 안전감과 성장]의 목표는 동일하다. 이제 상담심리사들은 드라마, 영화 촬영 현장에서도 배우들의 마음건강을 위해 애쓴다. 나 또한 내가 여러 작품을 동시에 자문해야할 때는 다른 상담심리사들을 섭외해 드라마 촬영 현장의 심리적 안전 확보를 위해 움직인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나는 소망한다. 드라마 촬영 현장에서 정말 섬세하고 깊은 감정, 일상생활에서는 쉽지 않은 행동들을 표현하고 소화해야하는 배우들이 심리적으로 안전한 환경에서 자신들의 전문성과 잠재력을 끌어낼 수 있기를. 이들의 마음 옆에 상담심리사들이 안전하게 지탱해줄 수 있기를.
배우들의 마음 옆, 상담심리사들의 존재만으로 이들이 마음의 쉬어감을 경험하며 촬영 이후, 연기 후유증으로 고통받는 일이 적어지는 날이 오기를 소망한다. 상담심리사들은 사람들의 마음건강의 안전을 요구하는 장면이라면 언제나 함께할 수 있는 준비가 되어있기에.